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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9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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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수 댓글 0건 조회 73회 작성일 25-11-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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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96.)

1996년 9월18일 강릉지역으로 침투하려던
북한 무장공비를 태운 잠수함이 발견되면서
49일 동안 강원도 거의 전역은 준전시 상황이었습니다.

▪️개요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시 강동면 동해고속도로 상에서 택시기사의 신고로 좌초된 선박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26명 승선)으로 확인되었고 무장공비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돌입하였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잠수함 좌초책임을 물어 사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승조원 11명의 시체를 발견하였으며 도주한 잔당들 13명을 교전 끝에 소탕하였으나, 아군 11명, 경찰 1명 ,예비군 2명, 민간인 4명이 희생되었다.

▪️침투 과정

1996년 9월 14일 5시, 해당 잠수함은 침투 작전을 위하여 함남 퇴조항을 출항 공해로 우회 이동하였다.

9월 15일 1시, 대포동 해안가에 도착하여 잠수함을 해저 정박하였다.

같은 날 21시, 안내조 2명과 함께 인민무력부 소속 정찰조 3명이 침투 상륙하였고, 안내조는 다시 잠수함으로 복귀했으며, 정찰조는 강릉공항및 레이더 기지, 항만, 화력 발전소를 정찰/촬영하였다.

9월 16일 21시, 잠수함은 사전 침투한 정찰조의 복귀를 위해 대포동 해안가에 다시 침투하여 연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공해상 해저에서 대기하였다.

9월 17일 23시, 재연결을 시도하다가 좌초되었으며,함장의 명령으로 보안 물품과 서류 등을 파기한 뒤, 그들은 강릉시 안인진리 해안에 상륙하였다.

9월 18일 1시 30분, 잠수함 폭파/자침을 시도 이후 공작원들과 승조원들이 잠수함에서 이탈, 상륙함으로써 사건은 시작되었다.
잠수함은 근처 68사단 해안 경계 초소에 관측되어 선보고되었다. 이후 택시기사 이진규 씨와 경찰에게도 발견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러나 신고에 대한 불신으로 인하여 진위여부 확인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바람에 상부로의 보고와 대응판단이 늦어졌고 이는 초동조치 지연으로 이어져 이 사건의 치명적인 단초가 된 조기 포위망 구축에 실패하는 원인이 된다. 이후 연대장과 사단 정보과장까지 출동하여 현장을 감수한 후에야 적 잠수함이 침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단 지역과 제1야전군사령부 전 지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당시 침투 경위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아군 해안경계 태세의 문제를 지적, 비판하는데 치중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택시기사 이진규 씨가 단독으로 좌초 잠수함을 발견하여 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68사단 초소에서도 좌초 잠수함을 이미 발견하여 감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 505회에서 이 작전에 참가했던 예비역 원사는 "군에서 잠수함을 미리 발견했지만 발견지점이 소초와 통신이 안되는 지역이라 초병이 도보로 소초까지 걸어가는 것을 이진규 씨가 발견한 것이다."라는 증언을 했다. 다만 무장공비에 의한 잠수함 상륙이라는 근래 초유의 사태를 믿을 수 없어서 신중을 기하느라 현장을 재차 엄밀히 확인하는 과정이 길어지면서 보고와 초동조치가 늦어졌을 뿐이다.사실 당시에도 해안 초소에서 초동 발견, 보고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언론과 여론은 이를 그냥 군의 면피용 뻥 정도로 여겼다. 워낙 군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시절이고 무엇보다 경찰이 이진규씨의 신고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역으로 이진규씨가 영웅시 되었던 탓이다.

9월 18일 16시 40분, 강릉시 강동면에서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2명이 정찰국 해상처 소속 안내조원인 이광수를 체포하였다. 비슷한 시각인 17시에는 68사단 수색대대의 항공 수색 및 정찰 중 정찰조가 살해당한 공비의 시신 11구를 발견했다. 사실 명목상으로는 좌초된 책임을 물어 처형한 건데 군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쓸데없는 인원 제거가 된다. 전투력도 없는 인원 살려둬봤자 식량만 축내고 더군다나 적에게 잡힐 경우 자기네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타수, 함장, 부함장 등 진짜 좌초에 책임있을만한 인원들은 나중에 전사하거나 생포되었고 좌초와 아무 관계가 있을리 없는 정치지도원 소좌는 여기서 시신이 발견됐다. 결과적으로 전투원이 비전투원을 몰살한 것이 된다.

초기에 이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공비들이 사용하다가 놓고 갔을 것으로 생각되는 물품이나 무기가 다수 발견되었다. 이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육로를 택하게 되어 공비들도 매우 당황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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